이란이 쏜 드론·미사일 200발, 세계 안보·경제 강타

이란이 시리아 내 자국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대규모 심야 공습을 단행했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 등 자국 방공체계를 활용, 심각한 피해없이 방어한 뒤 재보복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사실상 처음이다. 이란은 최근 중동 동맹과 서방 국가들에 이번 보복이 전면적인 역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점 조정된'(calibrated) 방식으로 보복할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재보복을 천명한 이스라엘의 보복 강도에 따라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돼 세계 안보와 경제에 큰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 이스라엘 본토 첫 공격… 드론·미사일 200여발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이란이 13일(현지시간) 밤부터 14일 오전까지 이스라엘을 겨냥해 미사일과 드론(무인기)을 200발 넘게 발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이 자국 영토에서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지대지 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했다”며 “그 미사일의 대다수는 우리 방공체계에 의해 이스라엘 국경 밖에서 요격됐다”고 설명했다.

하가리 대변인은 이스라엘 공군기가 국경 밖에서 요격한 순항미사일 10기, 역시 국경 밖에서 요격된 드론 수십대 등을 모두 포함할 때 이란에서 발사된 물체의 수는 총 200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당국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발사한 드론이 185대, 순항미사일이 36기, 지대지 미사일이 110기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피해가 경미하다고 밝혔다. 하가리 대변인은 “얼마간의 미사일은 영토에 떨어졌다”며 “현시점에서 소녀 1명이 다친 것, 남부에 있는 이스라엘 군기지가 타격당해 가벼운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 파악됐다”고 전했다. 오피르 겐델만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도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예루살렘 성지들을 겨냥했으나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겐델만 대변인은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이스라엘의 아이언돔(방공체계) 포대가 이들 미사일을 요격해 성전산과 알아크사 사원을 이란으로부터 구했다”고 썼다.

이스라엘 매체 ‘Ynet’는 자국군이 이란의 드론, 미사일을 99% 요격했다는 이스라엘 당국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오전 자국민에게 내린 대피 명령을 해제했다. 현지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이 일단락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란, 확전 피하려 했나… 민간인 대신 군 시설 표적, “드론 보내 격추 시간 벌어줘”

이란의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이 지난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해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급 지휘관을 제거한지 12일만이다. 이번 주말 심야 공습은 이란의 첫 전면적인 이스라엘 본토 공격이다. AP통신은 1979년 혁명으로 이란에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이스라엘을 향한 전면 공격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란의 이번 보복은 이슬람 율법의 키사스 원칙(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따른 것이다. 이란은 이번 공격을 이스라엘의 범죄 처벌을 위한 ‘진실의 약속 작전’으로 명명했다.

이란이 이끄는 반미·반이스라엘 대리세력인 이른 바 ‘저항의 축’도 공습에 가세했다. 레바논 헤즈볼라는 이란 공습에 맞춰 골란고원에 배치된 이스라엘 방공 진지에 수십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영국 해상 보안업체 암브레이는 예멘 반군 후티도 이스라엘 방향으로 드론을 여러대 발사했다고 전했다.

이란은 오랫동안 이스라엘과의 직접 충돌을 자제해왔다. 지난 몇 년간 자국 내에서 벌어진 핵시설 사보타주(파괴 공작), 핵 과학자 암살과 관련해서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를 배후로 지목하면서도 직접 보복에 나서지 않았다. 해외에 있는 군사·외교 시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에도 정면 대응은 자제했다. 이스라엘의 도발에 전면적으로 맞설 경우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감수해야 하고 그 결과로 중동 전쟁이 발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란은 지난 1일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 피습에 급하게 대응하지 않고 12일 만에 보복을 감행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 등이 대비할 시간을 준 측면이 있다. 이란이 보복에 나서면서 이스라엘에 도달하기까지 몇시간이나 걸리는 무인기를 이용하고 민간시설이나 종교시설이 아닌 군·정부 시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이란의 의중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ABC 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이 이스라엘의 군사, 정부시설만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AP 통신은 “이란 정부가 선택한 무인기 샤헤드-136은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이 폭탄을 실은 무인기를 격추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G7 정상 화상희의, 안보리 긴급회의 개최 결정… “바이든, 어떤 반격도 반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시내각 회의를 긴급 소집해 대응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습 방어가 일단락되면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뚜렷한 원칙을 결정했다”며 “우리는 우리를 해치는 자들을 누구든 해칠 것”이라고 재보복 방침을 밝혔다.

이스라엘의 한 당국자는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이스라엘 안보내각이 전쟁내각에 이번 사태 대응을 결정하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전쟁내각은 매파인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드 국방부 장관,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온건파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등 3인으로 구성된다. 이스라엘 당국자는 이스라엘 매체 Ynet에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이란의 첫 공격에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호한 대응이 곧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한 전쟁·안보 내각 회의가 끝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미국 악시오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이스라엘의 어떠한 반격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백악관 고위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란에 대한 재보복 여부나 수위는 미국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동맹, 우방들과의 의견 조율을 통해 결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NBC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을 중동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데 우려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4일 오후(한국시간 15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을 논의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전화로 주요 7개국(G7) 정상들을 소집해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단결된 외교 대응”을 조율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경제·안보 살얼음판…호르무즈 해협 봉쇄시 파장

이스라엘이 이란에 수위 높은 재보복을 가하고 이란이 이를 다시 응징한다면 글로벌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복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최악 시나리오는 중동전쟁 확대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등 중동 내 친이란 무장세력이 전면전에 총동원될 우려가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은 6개월을 넘어 장기화하면서 중동의 긴장수위를 일촉즉발로 높여 놓았다. 그 때문에 이번 사태를 두고 50년 만에 5차 중동전쟁이 터질 위험이 커졌다는 진단이 뒤따르고 있다.

글로벌 안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가자지구 전쟁 등 두 개의 전쟁으로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다. 중동정세는 국제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 만큼 확전 우려는 글로벌 경제에 중대 리스크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영향을 줘 글로벌 경기에 된서리를 내릴 수 있다. 특히 지구촌의 우려는 이란이 통제를 시도할 수 있는 ‘원유의 동맥’ 호르무즈 해협에 집중된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이란·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의 수출로다. 이란은 국제정세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때 과거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위협한 적이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전날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전 호르무즈 해협에서 포르투갈 선적 컨테이너선을 사전 경고처럼 나포했다.

일각에서는 최악 시나리오의 경우 1973년 ‘오일 쇼크’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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